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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프로필 나이 학력 경력 결혼 아파트

전문가 블로그 2024. 3. 22. 13:15

오늘은 양향자 프로필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구 합니다.

 

양향자 프로필은 어떨지 고향 나이 학력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양향자 프로필

 

양향자는 1967년 4월 4일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56세이며,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주은모아아파트와 경기도 화성시 청계동 롯데캐슬알바트로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본관은 제주 양씨입니다. 양향자는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며, 개혁신당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용인시 갑 예비후보이자 개혁신당의 원내대표로 재임 중입니다. 

 

이전에는 제28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으로 2018년 8월 31일부터 2019년 8월 1일까지 재임했습니다.

 

양향자 약력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11월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 입사해서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일했다. 그 당시 그녀는 주산, 부기 (장부기입), 타자 밖에 할 줄 몰랐다. 그렇다 보니 커피 타고 책상 닦고 복사하기, 반복적으로 반도체 회로를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기 정도의 잡일을 했다. 이런 업무들은 성장가능성이 없다. 호칭도 '미스 양'이었다.

어느 날 당시 부서장이었던 임형규 책임연구원[1]이 악필로 글을 휘갈겨놓은 뒤 '야, 누가 이것 좀 정리해 봐라!' 하고 말하고 책상에 놓고 나갔다. 그녀에게 시킨 일은 아니었지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읽어보니 전문용어 투성이었다. 선배들에게 물어서 간신히 글을 해독하고 서식에 맞게 정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임형규 책임이 돌아와서 보고 깜짝 놀라면서 누가 했는지 묻고는, "미스 양! 물건이네! 잘 했어!" 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것이 입사 후 처음으로 이름을 불리며 받은 칭찬이자 최고 실력자에게 받은 칭찬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실성을 인정받는 것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별개였는데, 당시 그녀는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녀가 복사해서 연구원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던 서류는 주로 일본어로 된 반도체 기술 논문들이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게 1983년이라 일본보다 기술이 뒤쳐졌다. 

 

그래서 박사들도 일본어 논문을 읽어야만 했다. 복사 심부름을 하면서 일어에 능통한 연구원 수가 의외로 적다는 걸 알게 된 후, 사내 강의를 통해 일본어를 공부하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주 1시간씩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지만 그 정도로는 논문을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인재로 2016년 1월 1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인사에서 "학벌의 유리천장, 여성의 유리천장,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지만, 청년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스펙은 결론이 아니라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직장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 단절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 이야기

 

양향자 전 한국의희망 대표의 사상을 따르거나 뜻을 같이하는 인물들의 계파이다.

양향자는 삼성전자에서의 '고졸 임원 신화'를 통해서 성공하고, 이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재영입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의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성공의 길을 걸어왔으나, 외사촌 남동생 사건과 관련해서 탈당을 하였다.

탈당한 뒤, 복당 신청을 할려다가 검수완박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결국 복당 신청 철회하였다. 이후 한국의희망을 창당하여, 정치신인들을 많은 끌어냈으나, 

 

개혁신당과의 합당 절차 속에서 최진석 상임대표, 김진수 대변인, 김법정 사무총장, 이채영 홍보팀장 등의 인사들이 집단탈당을 하여 양향자 대표의 입지가 흔들렸으나, 정인성, 최대홍 등이 합당 이후에도 남으면서 조직 기반이 유지하게 됐다.